사랑과 침묵과 기도의 사순절에 / 이해인
주님,
제가 좀더 사랑하지 못하였기에
십자가 앞에서 사랑을 새롭히는 사순절이 되면
닦아야 할 유리창이 많은 듯 제 마음도
조금씩 바빠집니다.
제 삶의 일과표엔 언제나
당신을 첫자리에 두고서도
실제로는 당신을 첫 자리에
모시지 못했음을 용서하소서.
"올해에도 우선 작은 일부터 사랑으로"
이렇게 적혀 있는 마음의 수첩에
당신의 승인을 받고 싶습니다, 주님.
문을 열고 닫거나
화분에 물을 주는 것과 같은
저의 조그만 행위를 통해서도
당신은 끊임없이 찬미 받으소서.
식사하거나 이야기하거나
그릇을 닦거나 걸레를 빠는 것과 같은
일상의 행위를 통해서도
당신을 변함없이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
제가 좀더 침묵하지 못하였기에
십자가 앞에서 침묵을 배우는 사순절이 되면
많은 말로 저지른 저의 잘못이
산처럼 큰 부끄러움으로 앞을 가립니다
매일 잠깐씩이라도 성체 앞에 꿇어앉아
말이 있기 전의 침묵을 묵상하게 하소서.
제가 다는 헤아리지 못하는
당신의 고통과 수난
죽음보다 강한 그 극진한 사랑법을
침묵하는 성체 앞에서
침묵으로 알아듣게 하소서.
십자가 앞에서 기도를 익히는 사순절이 되면
잔뜩 숙제가 밀려 있는 어린이처럼
제 마음도 조금씩 바빠집니다.
거룩함에 대한 열망을 새롭히는 계절
제가 기도하겠다고 약속했던
가까운 이웃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세상 곳곳에서 기도를 필요로 하는
수많은 이웃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한번도 제대로 기도를 못한 것 같은
절망적인 느낌 속에서도 주님,
기도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믿음과 인내를 주소서.
저와 함께 기도해 주심을 믿겠습니다.
그리하여 주님,
제가 먼 광야로 떠나지 않고서도
매일의 삶 속에 당신과 하나 되는
즐거운 사순절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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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님의 시 한편으로 사순절 묵상을 시작해 봅니다.
매일의 삶속에 주님과 하나되는 즐거운 사순절,,
주님.. 제겐, 기쁨의 눈물이 반짝거리는 사순절 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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