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의미 | 김강석 | 2022-12-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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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약속으로 주어진 구원
<구원>이란 ‘천국에 가기로 약속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국에 대한 약속을 주셨고, 지금 그 약속을 이끌어가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은 <약속>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약속이 완성되는 것은 언제입니까? 실제로 천국에 들어갈 때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약속을 받았을 때부터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구원은 지금 이루어졌습니까? 안 이루어졌습니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니까, 워낙에 확실하고 분명한 것이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니 구원은 아직 완성이 안 되었지만, 완성시켜주시기로 하나님께서 굳게 약속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렇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이 약속은 우리가 어떤 선한 행위를 했기 때문에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아무 것도 안 해도 된다는 것은 어떤 행위를 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지, 하나님을 향한 태도를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2. 신앙적 태도로서의 영접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올바른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구원에 참여합니까? 요 1:12이 분명한 답을 주십니다.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립니다. ‘영접’한다는 것은 모셔 들인다는 뜻입니다. 영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요한계시록 3:20이 잘 설명해 줍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이것이 영접입니다.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미지근한 교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 문에 오셔서 두드리고 계신데, 예수님을 모셔들이지 않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뜻뜨미지근하게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니고, 교회와 세상에 한발씩 걸치고 있으면 결국 버림을 받게 됩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3:15-16) ‘그렇게 미지근하게 신앙생활하면 망한다. 버림받는다. 지옥간다. 그러니 정신 차리고 회개해라. 네 인생의 문을 활짝 열고 예수님을 제대로 영접해라. 예수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삶을 회복해라.’ 그것이 <영접>입니다. 그렇게 주님을 영접하여 주님과 함께 살아가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 것입니다. 완전히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거듭남, 즉 중생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 구원이 임하여 새롭게 변화되고 나면, 거룩한 삶을 살기를 갈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섬기며 살기를 기뻐하게 됩니다. 날마다 성령 안에서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은혜 안에서 살아갑니다.
3. 때를 따라 돕는 은혜 ‘은혜(grace)’는 <죄를 극복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먼저 긍휼하심을 입고, 그 다음에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임합니다. 긍휼하심은 멸망하여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죄를 용서함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입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grace)’란, 죄의 유혹을 받을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도와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은혜는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에, 때를 따라, 우리가 죄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 아래 있을 때, 죄가 우리를 다스리지 못합니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롬 6:14) 은혜에는 ‘유혹과 죄를 극복하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머물러야 거룩해집니다. 은혜 아래에 머무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은혜의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4. '바라봄'의 법칙 <바라봄의 법칙>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간단해 보이지만, 실로 놀라운 원리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며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가 이제는 소망을 품고 주님을 바라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오직 은혜 안에 머물 때만 이길 수 있습니다. 은혜는 성도를 붙들어주시는 힘이며,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능력입니다. ‘주여, 은혜 아래 머물게 하옵소서. 제가 지금 넘어지려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은혜의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주님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우리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갑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싸구려가 아닙니다. 적당히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험담하고, 불평 불만 속에서 살면서도, 문제 없이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진짜 복음에 깨어있으십시오. 진짜 복음, 진짜 구원, 진짜 성화는 우리가 계속적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은혜>입니다. 은혜는 죄를 극복하는 능력이요, 회개하는 능력입니다. 은혜 안에서 우리는 날마다 조금씩 더 거룩해져 갑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점점 변해가는 신앙의 법칙, 그것이 <바라봄의 법칙>입니다. 우리는 자꾸만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힘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실패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묵상할 때, 그 힘과 능력과 생명력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바라봄의 법칙>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 하는 내내, 계속해서 그 십자가를, 나를 위해 고통을 당하시고, 내 죄 값을 대신 치르신 그 예수님을 계속해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이고 그것이 거룩해지는 성화의 길입니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 받고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봄으로써,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더 거룩해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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