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서의 축복
- 김강석 2019.12.26 조회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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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18 : 21 - 22 | 개역개정
-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 나를 괴롭힌 사람, 나를 애먹인 사람, 나를 착취한 사람,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들을 몇 번이나 용서해야 됩니까?"
이것이 베드로의 질문이었습니다. "일곱 번이면 충분합니까?"
당시의 유대교의 랍비들은 세 번까지 용서하면 된다고 가르쳐 왔기 때문에 베드로의 생각에는 일곱 번 정도면 충분히 자비로운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 18:22) 라고 하셨습니다.
용서하는 일에 제한을 두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끝없이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실천하기가 힘들고 어렵지만 이것은 매우 중요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우리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그 용서를 인생의 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 모든 빚을 탕감해 주셨습니다.
탕감해주는 것은 자신이 손해를 감수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손해를 보고 희생을 하면서 아량과 용서를 베푸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희생을 감수하시면서까지 우리의 죄를 다 탕감해 주셨습니다.
“...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마 18:32-33)
용서는 인생을 해피앤딩으로 만들어 줍니다.
죄 값을 도저히 갚을 수 없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에게 아무 공로 없이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은혜를 입었으니
우리도 그렇게 은혜를 베풀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그럴 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옵니다.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라”(골 3:13)
예수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용서를 실천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은혜가 은혜 되게 하는 것은 받은 은혜를 나누면서 사는 것입니다.
용서받는 것 만이 축복이 아닙니다.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더 큰 축복입니다.
용서할 수 있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가정과 사회와 심지어 교회까지도 전쟁터와 같은 곳이 있습니다.
미움과 분노와 싸움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용서받을 수 없었던 죄인이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 받은 의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제 우리가 용서해야 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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